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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공자의 논어를 통해 배우기

by 투투웨즈 2024. 2. 28.

공자의 논어

공자의 논어를 통해서 현대인들은 역사적 장막과 문명의 선입견을 넘어서서 공자의 인간적 면모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공자는 한나라 이후 유교가 중국의 공식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치에 오른 뒤로 2천 년 동안 줄곧 지고한 성인의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공자는 제후들이 주 왕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수평적인 경쟁을 벌이던 춘추 시대 당시의 상황을 무질서와 혼란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추세가 각국의 극단적인 경쟁을 초래하고 인간들의 심성을 피폐 시키며 백성들의 삶의 기초를 파괴할 것이라고 보았으며, 주나라의 전통과 질서를 회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공자는 신화시대로부터 하 왕조와 상 왕조를 거쳐 발전해 온 중국의 고대적 전통이 주나라를 통해 집대성되었다고 보았으며, 그 핵심은 가족 윤리와 사회 윤리의 합일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통치자는 단순히 정치권력의 소유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자식처럼 보호해야 할 부모와 같은 권한과 책임의 소유자이며, 신하와 백성들에게 있어서 통치자는 단순한 정치적 권력자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받들어야 할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 상호 인정과 신뢰가 이루어졌던 이상적인 시기가 바로 주나라 초기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자는 높은 덕성을 갖춘 통치자의 어진 정치와 그에 대한 백성들의 충심으로부터의 복종이라는 덕치를 주장하였으며, 정치 질서와 사회 윤리는 다 함께 효제라는 가족 윤리로부터 출발함을 역설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자는 조상 숭배, 효도, 우애 등과 같은 가족 윤리를 통치자의 도덕적 자질이 형성되는 터전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보수적 지식인의 고뇌와 신념이 논어에는 간결 하지만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왜 고대의 이상적 질서를 재현시키고자 했을까요. 현실 속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왜 자신의 이상을 끝까지 견지하고 더구나 현실 정치에 접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을까.

추구해야할 가치있는 덕목이란

공자는 논어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덕목들을 다양하게 제시하였습니다. 논어는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이 아니라 공자 사후 제자와 문인들이 공자의 생전 언행과 기억을 더듬어 가며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마치 강의 노트와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논어를 통해 공자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 한편으로 공자는 다양한 제자와 문인들에 대하여 각기 그들의 특성과 수준에 맞추어 문답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용어나 표현이 각기 달라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인, 의, 예, 지, 덕, 효제, 충서, 천명, 정명 등 논어에서 천명된 다양한 덕목과 가치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인 입니다. 공자는 주나라 초기의 봉건 제도가 지향했던 규범적인 정치 사회 질서가 자리 잡고 그에 부응하여 각 계층과 부문이 규범에 맞는 행위를 해야만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규범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질서를 가능하게 가는 원동력을 공자는 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외면적 강제에 의해 뒷받침되는 규범과 질서는 항구적일 수가 없으며 자주적이고 자발적인 도덕성의 자연스러운 발로로서 규범과 질서가 지켜질 때에만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은 도덕적 규범과 행위의 규칙이 인간성의 깊숙한 곳에 내면화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질서와 규범을 받아들이며 외적인 강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규칙의 속박을 오히려 즐거워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 때문에 공자는 인을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 인민의 삶을 안정시켜 나갈 책임을 지고 있는 지배 계층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덕목으로 내걸었습니다. 공자는 타인에 대한 배려, 이기심을 극복하고 사회적 규범과 자신의 가치관을 내적으로 일치시키는 것 등으로 인의 요체를 설명하였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공자가 인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군자가 인을 버리면 무엇으로 이름을 내겠느냐? 군자는 잠시라도 인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암만 위급한 때라도 결코 인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예와 덕

공자는 논어에서 사회 윤리와 정치 질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예라는 다소 느슨하고 포괄적인 규범의 형태로서 제기하였습니다. 예의 기능을 공자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공자는 법이나 형과 같은 외적 강제를 지양하고 안정적인 질서의 원천으로서 각 계층과 부문들이 지켜야 할 자발적인 행위 규범을 "예"라고 제시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볼 때 공자가 말한 예란 주나라 초기에 제정되고 통용되었던 제도와 규범의 총화를 뜻한다. 그 규범을 준수하겠다는 자주적인 결단의 능력은 앞에서 말한 인이었습니다. 

 

공자는 당시의 혼란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배 계층 스스로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 통제와 겸양의 정신에 입각하여 주나라 초기의 건전한 윤리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습니다. 예에 대한 강조는 이 때문에 사회 윤리나 질서, 관습의 영역을 넘어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의미를 갖습니다. 예는 단순한 규범의 총화에 그치지 않고 주나라 초기의 이상적인 사회 질서와 문화 의식을 체득하면서 행위의 규범과 자신의 내면적 세계관을 부합시켜 나가는 중요한 실천적 덕목이었습니다. 

논어에는 행위의 규범인 예의 실천을 통해 고양된 높은 정신적 윤리적 상태가 덕이란 말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올바른 정치란 덕의 발현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누누이 강조하였습니다. 군주에게 예의 부단한 실천과 반성적 사고의 축적에 의해 얻어진 덕성이 없다면 정치를 담당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공자는 예의 실천을 통해 덕성이 함양되고 그리하여 규범의 내면화라는 인을 구현할 수 있으며, 거꾸로 인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통해 예의 내면화와 덕의 고양이 가능해짐을 논어를 통해 피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