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가 추구한 것
사르트르의 사상은 초기 이후 말년에 이를 때까지, 역사의 격동 속에서 발전적 변모를 거듭해 왔습니다. 당대의 구체적 사안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그것을 소화해 가면서 자기의 사상에 편입시켜 가며, 그가 시종일관 추구한 것은 인간의 자유입니다. 사르트르는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 언제나 인간은 그 어떤 인과적 조건 내지 선행하는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순전한 자유에 의해 정의된다고 하는 명제를 사상의 근저에 두고 있었습니다.
자아에 관한 그의 사상의 흐름은 1. 상상적 자유, 2. 행동적 자유 3. 실천적 자유로 구별하여 논해지기도 합니다. '상상적 자유'는 주로 상상력의 문제에서 전개된 사상이고, 실천적 자유는 '현대에 있어 마르크스주의는 회피할 수 없는 유일한 철학이며 지금까지 나의 사상적 편력은 다만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라는 본인의 발언이 시사하듯이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구상된 인간의 자유입니다.
존재와 무의 이론적 내용은 두번째, 즉 '행동적 자유에 관한 것입니다. '존재와 무'라고 하는 표제는 곧 살펴보겠지만 '즉자 존재'와 무를 낳는 존재, 즉 '대자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면 이제 존재와 무의 핵심 개념인 즉자 존재와 대자 존재는 무엇을 말하는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즉자존재
즉자존재란 아무런 의식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 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식을 갖지 않는 존재, 그저 '그 자체로도 있는 '인과적으로 결정된 사물과 같은 존재를 말합니다. 이에 대해 대자 존재란 의식적 존재, 즉 대상을 의식하고 그 의식하는 자신도 의식하는 존재를 말합니다. 데카르트는 의식을 단순히 사유하는 의식으로 파악하였으나 사르트르는 의식의 지향성을 주장한 후설의 영향으로 무엇보다도 의식은 어떤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고 파악합니다. 즉 대상 없는 의식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후설의 생각에 더해 사르트르는 그만의 독자적인 견해로서 의식은 대상에 대한 의식이면서 동시에 의식하는 그 자신에 대한 의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식적 존재가 된다는 것, 대자 존재가 된다는 것은 존재의 세계 속으로 끝없이 무를 가져온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의식적 존재란 자신을 그 대상으로부터 분리하고, 사물의 영역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며, 질문하고 의심하며,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결여를 의식하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분리하고 구분하고, 물음을 제기하고 의심하고, 가능성이나 결점을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은 세계 속으로 부정적인 요소를 가져오며 그것들은 어떤 것이 아니면 또는 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적 존재만이 결여하고 있는 것, 가능한 것을 생각하며 나아가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고 스스로가 아니기조차 바랄 수도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세계 속에 부정과 무를 가져왔다는 사르트르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사르트르는 갑자기 의식적 존재가 세계 속으로 가져오는 무와 부정은 다름 아닌 인간의 자유이기도 하다고 주장합니다. 즉 대자 존재로서 나는 부정하고 절멸시키고 거부하고 저항하고 파괴하고 의심하는 자유라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 힘으로 현재의 모습과 다른 나의 모습을 부단히 선택하고 규정하고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인간이라는 것과 자유롭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극적으로 의식적 존재로서 나의 자유가 나 자신의 실존 속으로 들어옵니다. 즉 의식은 전적으로 자유롭고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 때문에 자발적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즉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사이에는 무가 존재합니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의 자유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고통으로써 경험합니다. 즉 나는 나의 자유가 내 과거의 결정과 미래에 대한 나의 맹세가 갖는 결정력을 파괴하고 무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통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결정론으로 무장한 견고한 은신처 내지 도피처를 신념처럼 끌어들여 그것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잘못된 신념'이자 허구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적 존재로서 나는 그 어떤 것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거나 특정의 조건에 의해 묶여지고 결정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결정론적인 조건 지음은 단지 인과적으로 결정된 즉자 존재의 영역, 사물과 사물의 세계에 속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적 존재는 자유로울 수밖에 없도록 저주받은 존재입니다. 즉 내 자유의 한계는 자유 그 자체를 제외하고서는 발견될 수도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자유롭기를 그만둘 자유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는 이토록 가공스럽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러한 가공스러운 자유 속에 더욱 심오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즉 나는 전적으로 자유로운 의식적 존재로서, 바꾸어 말하면 전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자유 속에서 어지럼증, 불안, 고뇌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나의 완전한 자유가 다름 아닌 내가 상황을 규정하고 내 세계의 의미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나의 전적인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뇌 속에서 나는 나를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으로 이해하며 그리고 세계의 의미는 자 자신 이외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을 즉각 이해한다. '그러므로 의식적 존재로서 나는 오직 내가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만 나 자신의 삶을 결정하며 그 책임 또한 전적으로 나에게 귀속된다.
인과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거나 조건 지어진 객관적 본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그 책임을 씻어 주고 구원해 줄 나 이외의 어떤 초월적 존재자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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