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 구조의 핵심적인 개념은 패러다임입니다.
그는 스스로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탐구했는데, 여기서 그는 과학 활동이란 어떤 새로운 과학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커다란 지적 모험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과학 틀 속에서 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쿤은 정규적인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 개인은 거의 대부분 새로운 과학의 영역을 개척하고 오랫동안 받아들여진 과학의 믿음을 시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학자가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그전에 아무도 풀지 못했거나 제대로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푸는데 능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했다.
쿤의 주장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없이는 과학자들의 작업은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실험하고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지만 이러한 행위는 모두 패러다임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이러한 틀이 없다면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 속에서 거기에 맞는 또는 거기에서 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연구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을 떠나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패러다임이 초기에 받아들여졌을 때 이것은 보통 과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관찰과 실험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패러다임을 벗어나서 활동할 수 있는 과학자들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패러다임 속에서 정교한 장치의 제작, 어휘와 기술의 개발 등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패러다임은 정상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이러한 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동일한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 패러다임 속에서 이론을 정교화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데이터들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 정상 과학을 잘 다듬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정상 과학이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발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전통'이라고 인정받는 과학입니다. 그러므로 정상 과학은 과학자들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 좀 더 발전한 과학 활동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정상 과학의 패러다임은 좀처럼 흔들리거나 변형되지 않습니다. 어떤 의문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해도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문점과 미해결 문제가 조금씩 쌓여 가면 어떤 지점을 지나면서 그 패러다임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정상 과학에 위기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대치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 혁명인데, 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체계나 양자 역학의 등장과 성공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일어났음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보는 태양중심 체계는 17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구 중심 체계를 몰아내고 새로운 우주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 체계를 제시한 것은 지구 중심 체계의 문제점이 점차 쌓여 가는 중이었던 1543년의 일이었지만, 완전히 인정받게 된 시점은 코페르니쿠스가 이 이론을 내놓고 난 후 100년쯤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관측 결과와 계산 결과가 축적되고 이러한 결과가 태양 중심 체계와 더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야 태양 중심 체계가 정착했던 것입니다.
태양중심체계의 경우에는 기존의 지구 중심 체계라는 패러다임의 위기가 인식되고 붕괴의 조짐이 보인 시점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여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산소와의 결합을 통한 연소에 관한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기존의 연소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으로 작용했던 플로기스톤 이론의 위기가 뚜렷하게 인식되기 이전에 발달이 덜 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 사례입니다. 플로기스톤 이론은 라부아지에의 연소에 관한 생각이 드러난 후 몇 년 안에 라부아지에의 이론으로 대치되고 자취고 감추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쿤이 주장하듯이 과학 혁명이 낡은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치됨으로써 일어난다고 하면, 과학이란 끊임없이 발견과 이론이 쌓여 가면서 발달하는 연속적이고 누적적인 과정이 될 수 없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면서 진행되는 것으로 연속적이지도 누적적이지도 않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도 쿤의 과학혁명구조는 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 관한 논쟁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과학자들은 쿤이 기존의 과학자 상, 즉 자연에 관한 객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의 영웅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쿤의 주장에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쿤은 과학이란 것은 하나의 기존 패러다임 속에서 평범하게 지속되다가 위기가 고조되면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했던 것입니다. 과학 철학자들도 과학혁명의 구조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는 이 책이 기존의 과학 철학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입니다. 기성 과학 철학자들은 과학혁명의 구조가 독창적이지도 못하고 대단히 혼란스러운 책이라고 평했습니다. 특히 논리 실증주의의 전통에서 과학을 설명했던 칼 포퍼 학파는 쿤의 주장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이었습니다. 포퍼는 과학의 합리성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에, 쿤의 정상 과학에 관한 생각을 과학과 문명의 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과학 혁명의 구조는 과학 기술 사회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이들이 사회 구성주의를 만들어 내는 데 영향을 미쳤지만,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와 사회 구성주의를 연관 짓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쿤의 추종자들은 쿤보다 한술 더 떠서 새로운 과학 이론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과학적 증거의 바탕 위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투쟁의 바타아 위에서라고 주장했습니다. 쿤은 이러한 쿤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자의 논어를 통해 배우기 (1) | 2024.02.28 |
---|---|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행동적 자유에 대해 (0) | 2024.02.28 |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 (0) | 2024.02.28 |
지속의 지성,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크손 (0) | 2024.02.28 |
자유로부터의 도피, 프롬, 나 자신 (0) | 2024.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