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나 자신
에리히 프롬이 이 책을 저술할 당시에는 나치 정권의 등장을 현대의 심각한 위기라고 본 프롬은 파시즘이 창궐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파시즘, 즉 권위주의적 조직이 승리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정치, 경제적인 설명 방식으로 경제공황과 독점 자본의 제국주의적 충돌이나 소수 지배자의 권모술수와 탄압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심리학적 설명 방식으로 히틀러를 광인이나 정신병자로 보는 것입니다. 프롬은 이러한 설명 방식들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고 정치, 경제적인 설명 방식과 심리적인 설명 방식의 변증법적인 상호 작용 속에서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 심리적인 설명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근대인의 심리적인 성격 구조가 '파시즘이 과연 어떻게 해서 위대한 여러 나라의 국민을 매혹했는가?'라는 문제에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정치, 경제적인 요인과의 상호 연관 속에서 사회 심리적인 요인을 예리하게 파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프롬은 특히 자유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근대인의 성격 구조를 분석합니다. 자유가 근대의 문화 및 사회적 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롬은 근대 서구의 역사가 인간들을 구속해 온 정치적, 경제적, 정신적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노력의 역사였음을 확인하면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대 서구인은 자신들을 얽매고 있던 쇠사슬을 하나씩 끊어갔습니다. 자연의 지배로부터 탈피하고,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절대주의 국가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최후의 투쟁이 될 것이며, 이로써 자유를 위한 궁극적인 승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프롬은 이것이 섣부른 믿음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파시즘이라고 하는 권위주의 조직이 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프롬은 권위주의 조직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근대적인 자유의 양면성 때문이었다고 진단했습니다. 근대의 인간은 전 근대적인 사회의 여러 가지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면서 근대인은 스스로를 분리, 독립된 존재, 즉 개인으로 의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프롬은 '개체화'라고 부르는데, 근대적인 자유의 진전은 이 개체화 과정과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전근대 사회에서 인간은 여러 가지 공동체적 유대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이 유대 관계는 한편으로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었지만, 프롬은 이 유대 관계가 동시에 인간에게 안정감을 부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근대의 개체화 과정은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유대 관계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롬에 따르면 근대의 자유는 한편으로 인간을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인을 고독 속에 빠뜨릴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개인이 좀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독에 빠지게 되면, 그는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권위주의적 조직이 승리하게 된 심리적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프롬의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개인이 고독에 빠지게 되는가입니다. 프롬은 자유를 ' ~으로부터의 자유'와 '~에로의 자유'로 구분합니다. 전자는 소극적인 자유와, 후자는 적극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삶에서는 이 후자가 전자보다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근대 서구가 전 개인주의적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획득한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였습니다. 적극적인 자유는 근대 서구인들이 능동적인 자세로 추구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기능성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에, 개인은 고독과 무력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은 자유를 무거운 짐으로 느끼게 되고, 고독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외적 권위를 찾게 됩니다. '소극적인 자유로부터 적극적인 자유로 전진해 갈 수 없는 한, 결국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게 됩니다.'
프롬은 근대인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메커니즘으로 권위주의에로의 도피, 파괴성의 로부터의 도피, 기계적 획일성으로의 도피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에로의 도피는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첫 번째 메커니즘으로 인간이 개인적 자아의 독립을 버리고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자신을 융합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실한 전 개인주의 사회에서의 제1차적인 속박 대신에 새로운 '제2차적인' 속박을 찾는 것입니다. 프롬은 권위주의에로의 도피는 사람들의 권력 지향성과 복종 지향성에서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각각을 사디즘적 성향과 마조히즘적 성향으로 설명합니다. 마조히즘적 성향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형태는 열등감, 무력감, 자기 무가치 감정입니다. 마조히즘적인 성향을 지닌 인간은 자기를 무력하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느끼고, 그래서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여깁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외부의 힘, 즉 다른 사람이나 제도에 복종하려고 합니다. 사디즘적 성향은 타인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것인데, 더욱 이 사디즘적 성향에서 본질적인 것은 타인의 지배로부터 쾌락을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마조히즘적 성향과 사디즘적 성향은 정반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프롬은 이 정반대되는 두 경향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힌다. 두 성향은 모두 참을 수 없는 고독감과 무력감으로부터 개인을 벗어나게 하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파괴성으로의 도피는 외계를 파괴함으로써 그 외계에 대한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 (0) | 2024.02.28 |
---|---|
지속의 지성, 창조적 진화 앙리 베르크손 (0) | 2024.02.28 |
프로이트의 시선, 꿈의 해석 (0) | 2024.02.28 |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자본론 (1) | 2024.02.28 |
플라톤의 국가론, 서양철학 (0) | 2024.02.28 |